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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님의 시 [소록도]

소록도
-조동화 詩-

그 이름처럼 작은 사슴은
어디에도 없었다

천형天刑의 서러운 사람들이
한하운韓何雲을 알기 전부터
애절한 보리피리 하나씩 가지고 사는
아득한 적소謫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모든 인간사를 두고
섬에 든 지 오십 년, 혹은 육십 년...

처음 수평선은 타는 그리움이더니,
그 다음은 또 캄캄한 절망이더니
끝내는 다문 입술 무심이 되고...

철썩철썩 부서지는 파도 속에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지고,
코가 무너지고,
더러는 시신경도 끊어져
늦가을 잔양殘陽처럼 사위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승을 등지고 돌아앉아
오직 내세來世의 소망을 앓는다

물이 빤히 보여도
그 어느 절해고도보다 먼 먼 섬,
그리고 아픈 섬

다행히 키우는 도야지들은
문둥이를 모르고

해마다 봄은 먼져 와
정월에 벌써 산비탈 황토밭마다
마늘 순이 한뼘이나 자라 있었다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24-25p에 실린 시
*펴낸곳: 북 카라반
*지은이: 천양희,신달자,문정희,강은교,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