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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
.
.
.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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