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거리》
*위치: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 188번길 25-2
(인계동 140)
*수원시청역 9번출구에서 380m
오랜만에 수원에 갔습니다.
수원하면 떠오르는 , 밤풍경이 아름다운 나혜석거리가 생각나 숙소를 나혜석거리로 정했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전 우선 나혜석거리를 걸어보았습니다.
함께 간 짝지에게 "여기가 나혜석거리야~~"했더니 , "나혜석이 누구?" 합니다.
나혜석이 누구냐면~~
설명을 해주려는데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네요.
서툴게 조금 알고 있었던 까닭이지요~~.
이 참에 나혜석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보아야지 맘먹고 찬찬히 찾아봅니다^^
나혜석이 앉아있는 동상 뒤로 커다란 벽 조형물이 있는데 "잠들지 않는 길"이라 이름하며 나혜석이 생전에 부딪혔던 보수적 사회를 상징한다는 벽입니다.
소나무 둥치모양의 갈라진 틈새는 사회의 벽을 깬 신여성의 진취적 면모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거리 양쪽에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모퉁이에선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 캐리커쳐를 그리는 분도 있습니다. 어디서 몰려든 사람들인지 북적이는 밤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이게 합니다.
아침이면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도는 이 거리가 밤이면 이렇게 음식과 노래와 불빛이 어울려 활기찬 거리로 변모합니다^^
나혜석은 1986년 4월 28일 수원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지식백과에 나혜석을 쳤더니 첫문구가 "화가 나혜석-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신여성"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 나혜석거리의 벽조형물에 새겨진 시가 바로 [인형의 가(家)]인데, 아하 ~느낌이 오네요!
나혜석은 당시 시대를 거부한 용감한 신여성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며 작가이며 교육자, 사회운동가 등 다재다능한 나혜석을 수식하는 타이틀은 너무도 화려합니다.
나혜석의 아버지 나기정은 한말에 사법관을 거쳐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고위관리였습니다.
돈과 권력을 다 가진 당시의 남자들이 가끔 그러하듯 나혜석의 아버지도 여러명의 첩을 두었는데 심지어 딸보다 어린 첩도 있었다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 고생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겠지요.
그런 중에 다행히도 그녀의 아버지는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여자미술대학교 서양화과 선과보통과에서 유학을 합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듬해인 1914년에 도쿄유학생 잡지인 "학지광"에 [이상제 부인]을 발표하고 ,1918년에는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합니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하기도 했다합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루고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첫 유화개인전을 가졌으며,4월에는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홍일점으로 유화를 출품하였다합니다.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여 수상과 특선을 거듭하였고 1931년에는 도쿄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도 입선하였다 합니다.
1927년에는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일본 정부 외교관 신분이던 남편 김우영과 함께 세계일주여행에 올라 파리에서 약 8개월간 머무르면서 야수파화가 비시에르의 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합니다. 이어 유럽 각국의 미술관 순례를 통해서 미술 시야를 넓히고 미국을 거쳐 1929년에 귀국을 합니다. 같은 해 수원에서 '구미사생화전람회'를 개최하고, 1930년 남편과 이혼 한 뒤에는 그림에만 몰두하였고 1933년에는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 미술학사를 설립합니다.
1934년에는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최린에게 정조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합니다. 1935년 [신생활에 들면서]를 발표하고 1936년에 소설 [현숙]을, 1937년에는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여습니다.나혜석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1935년서울의 조선관 전시장에서 가졌던 '근작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합니다.
1937년 무렵부터 방랑생활에 빠져들었고 1948년 이혼과 정신 장애, 반신불수의 비극 속에서 생애를 마쳤다합니다.
[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혜석(羅蕙錫)]
이렇게 나혜석의 생애를 훑어보면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여성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혜석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당시의 시대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자유분방한 삶의 이면 때문인 듯 싶어요.
일본유학 시절 오빠 나경석의 친구인 시인 최승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더우기 최승구는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구요.
시인 이광수와도 잠시 사귀었다 하는데 이광수도 혼인 중이었다 합니다.
3.1운동으로 체포되었을 때 변호를 맡은 사람이 김우영이었는데 김우영은 이혼 중이었고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고 합니디.
김우영의 오랜 구애 끝에 나혜석과 김우영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신문에 공개청첩장을 내고
1920년 4월 10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식결혼을 올립니다.
당시 김우영과 신식 결혼식을 올린 것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더 놀란 이유는 신부가 내건 결혼조건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번째는 지금처럼 나를 사랑해줄 것!
두번째는 그림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세번째는 시어머니와 전처의 딸과는 따로 살게 해줄 것!
네번째는 첫사랑 애인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
요즘같아도 뜨악 할 조건인데 심지어 100년도 전의 일이었다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김우영과의 사이에 딸하나 아들 셋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임신 때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다!'라고 출산의 고통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유럽으로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 남편은 베를린으로 법률공부를 하러 떠나고, 파리에 혼자 남겨진 나혜석을 김우영은 지인 최린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만 불륜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 일로 나혜석은 이혼당하게 되고 최린도 떠나버립니다. 이때 나혜석은 정조유린죄라며 당시 돈 12,000원의 소송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 소송은 법원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패소 판결을 받았고 이 일로 대중들로부터도 냉소적인 대우를 받게 되었다 합니다.
이혼과 함께 나혜석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과도 영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떠나고 나혜석은 한국최초의 서양화가에서 불륜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합니다.
이 때 울분을 참지 못하여 1934년 [이혼고백서]를 발표하며 가부장제를 거세게 비판하였다고 합니다.
'남자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여자에게만 요구한다'
'여자도 사람이다. 인형이나 노리개로 생각하지 말라'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며 오직 취미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세인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합니다.
1948년 나혜석의 사망 기사는 '신원 미상,무연고자,사망원인 영양실조, 추정 연령 65-66세' 이게 전부로 무연고자가 모인 병동에서 홀로 눈감았다고 하니 그의 노년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나혜석이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99년 '제1회 나혜석 바로 알기 심포지엄"이 열린 이듬해 2월에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며 그 동안 가려졌던 진면목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99년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에서 2000년 2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나혜석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여성운동가들과 여성단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여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서울여대 교수 오증자는 "현모양처는 있는데 왜 현부양부는 없느냐. 나혜석이 열아홉살 때 한 말이에요. 현모양처가 그렇게 좋으면 남자들도 현부양부하지 왜 안하느냐는 거지요. 나혜석이 떠난지 52년이 되지만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라며 현대는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2000년11월20일 동아일보 봉건의 벽에 저항했던 나혜석의 외침은 아직도...)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배우 나문희가 '독립운동가 신여성 나혜석은 나의 고모할머니'라고 밝히기도 했었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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