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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광주의 [국립 5.18 민주묘지]와 영화 [택시운전사]

*위치:광주 북구 민주로 200
(운정동 산 34번지)
*문의: 062-613-1332
광주전역에서 5.18민주광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518번 버스를 타면 된다 합니다. 이번 여행길에 새로 알았네요~^^
그만큼 1980년 5월 18일은 광주시민들에게 큰 아픔이고 큰 상처였다는 사실이겠지요!!

민주화의 문 바로 옆에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
-안 내 문-
여기 국립 5.18 민주묘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신 분들과 당시 부상을 당하였다가 구금되어 고문과 옥고를 치른 후 사망하신 분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1994년부터 시작한 5.18 묘지 성역화사업이 3년만에 완공되어 (1994~1997)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광주시립묘지 3묘역)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 곳에 모셔와 안장하였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설치. 운영하여 온 5.18국립묘지가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2002.7.27. '국립묘지'로 승격됨에 따라 국가에서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국립5.18민주묘지는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어 우리민족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영원한 민주성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5.18 민주묘지에 다녀와서 2017년 8월에 개봉했던 [택시운전사]란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한국의 소식을 듣고는 촬영차 공항으로 들어옵니다.
기자분을 태우고 광주에 가서 촬영하고 서울로 돌아오면 10만원을 준다 했다는 얘기를 식당에서 귀넘어 듣고는,
10만원이면 넉달 밀린 월세를 다 낼수 있는 거금! 만섭은 손님을 가로채어 광주로 향합니다.
상황도 모른 채 그 옛날 사우디에 돈벌러갔다가 줏어들은 몇마디 영어로 독일기자에게 말걸어가며 신나게 달리는 택시운전사 "만섭"!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미 막혀 있었지만 어찌어찌 광주에 들어섰는데 이건 또 무슨 아수라장?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그라는지 ..."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가고 죽임을 당합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는 혼자 두고온 11살 딸이 염려되어 빠져나오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서울택시는 모조리 잡아들이라 한다며 전남택시 번호판을 달아주곤, 아무도 모르는 샛길을 가르쳐주며 어여 딸에게 가보라는 전남택시운전사!
광주를 벗어나와 딸이랑 통화를 하고, 차를 수리하는 동안 국수 한 그릇 먹고, 예쁜 딸 구두도 샀습니다. 그러고 딸에게 돌아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은정아~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아빠택시에 꼭 태워야 하는 손님인데..."
그렇지~~!
우리의 자랑스런 택시운전사 광주로 다시 돌아갑니다.
다시 돌아가보니 광주는 완전히 전쟁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갔노라는 통역관 재식이가 죽어 있었습니다. 끌고 가다가 숨이 끊기자 논두렁에 버렸드랍니다.
맥놓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기자에게 만섭은 제발 이 진상을 찍어달라고,찍어서 세계에 알려달라고 기자를 일으킵니다.
들것에 실려오는 수많은 부상자들 ,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무고한 시민들! 그러는 중에도 뉴스에서는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내려가서 데모를 하고 있다고, 오히려 데모진압하러 나간 군인들이 다치고 있다고 나옵니다.
광주 시민들~ 어찌 이 날을 있겠습니까?
목숨걸고 날아드는 총탄 속에서 큰 카메라를 메고 촬영을 하던 독일기자님에게는 이 모습이 어찌 비추어졌을까요?
우리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달라며 등떠밀던 지역 기자님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검문소는 다 통제되고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만 합니다.
검문소를 막아선 군인들! 차에서 내리라 하곤 총부리를 겨누고 트렁크 를 열라 합니다.
트렁크에는 오월초파일에 썼던 등들이 실려있었습니다.외국인 기념품이라 만섭은 둘러대고 군인은 트렁크안을 뒤적이는데 서울 번호판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흔들림 없는 한 군인의 눈빛!
보내드려~~!!
대한의 아들 이 분이 또 나라를 구하는구나^^
바로 그 순간 외국인을 태운 차량은 그누구도 통과시키지말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택시운전사는 속력에 속력을 내어 돌진하지만 사방으로 군인들의 차량에 완전히 포위되어버립니다.
그 순간 전남택시들이 번개처럼 나타나 군인들을 혼돈케 합니다.
"조심해서 가시오잉~여긴 걱정하지마시고"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차에 후진기어를 넣어 뒤로 맹후진하여 군인들 차량에 부딪히는 살신성인의 모습이라니..
외신기자를 태운 택시는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와 공항으로 달립니다.
내일 아침 10시 비행기에 예약을 해놓아 정보를 흘리고는,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항공예약을 다시 하고 , 쵸코렛상자에 필름들을 바꾸어담고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기사만 띄우고 바로 돌아오겠노라고, 차 수리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며 연락처를 달라는 기자에게 택시운전사는 김만복이라는 엉뚱한 이름과 폰번호를 적어줍니다.
힌츠페터 기자가 택시운전사 만섭의 도움으로 목숨을 걸고 촬영했던 광주의 진실은 전세계에 보도되었고 이는 군부독재의 폭압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힌츠페터기자는 김만복을 열심히 찾았지만 이름도 전화번호도 엉뚱한 걸 적어줬으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2003년 12월 한국에서 언론상을 받게 된 힌츠페터는 이런 연설을 합니다.
"한국에서 언론상을 받게 되어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만났던 그 분들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순간 보고싶은 한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미스터킴! 나의 소중한 친구~ 고맙습니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본 만섭은 말합니다.
"내가 더 고맙지 이사람아~ 땡큐땡큐~~"

그 후로도 힌츠페터는 김사복을 열심히 찾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채 2016년 1월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