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의 시간
-詩 마종기-
숨가쁘게 바쁜 의사였을 때
밤사이에 모인 죽음을 새벽녘에 보내며
가책의 낮은 소리로 두 눈을 감기면
는개는 창밖에서 비린 눈물을 보였지.
아니면 내가 나를 다 지우고 싶었나,
체념한 몸을 털고 숨 거둔 환자들이
늦봄의 형이 되어 나를 위로해주었지.
(는개는 언제부터 다가온 것일까. 발자국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를 통째로 적신 것일까, 언제 시작을 한 것인지 끝이 난 것인지도 모르고, 몰려오는 오한에 몸을 떨기만 했다.)
70여 년 평생의 친구는 연락도 없이
메모 한 장 남기고 죽었다는 전갈,
한숨 쉬는 하늘과 정적이 어둡게 닫히고
먼 는개가 다가와 내 눈을 적시는구나.
그래도 떠나는 뒷모습이 편안했었다니
내 옆에 남겠다는 그 약속만은 믿겠다.
낯선 나라 너른 들판은 푸르고
시냇물 소리가 반성하는 나를 부른다.
죽은 이들은 언제나 조용하고 착하다.
아침결의 집착처럼 잠이 덜 깬 미련들이
후회하는 영혼을 는개 속에 숨긴다.
*마종기시집 [천사의 탄식] 47-48p에 실린 詩^^
*펴낸곳:(주)문학과 지성사
*초판1쇄 발행 2020년 9월 9일
※는개?
안개비 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라고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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