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關係
-조동화 시-
1
겨울 뜰에 난만한 피라칸사스 한 그루
가까이서 보면 다닥다닥 붙은 열매들이지만
멀찍이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진홍의 꽃떨기다
어쩌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진 날이면
이것은 또 꽃이라기보다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다
2
겨울 들면서 무당새 한 마리
아침이면 어김없이 피라칸사스를 찾아온다
와서는 욕심내지 않고
꼭 붉은 열매 네댓 알씩 쪼아 먹고 간다
무당새의 작은 심장을 겨울 내내 뛰게 하고
깃털에 싸인 엄지만한 그 몸을 뜨겁게 달구며
앙증맞은 부리가 쏟아놓는 홍보석들과
창공에 무수히 아롱지는 날갯짓까지
넉넉히 펼쳐내는 변용의 힘.
불가해不可解의 열매여!
인간은 한갓 볼거리로 피라칸사스를 뜰에 옮기지만
나무와 새의 보이지 않는 고리는
늘 저렇듯 오묘하게 이어져 있다
*조동화시집 《나 하나 꽃 피어》의 102-103p에 실린 詩
*펴낸곳 : 도서출판 초록숲
*초판1쇄발행
20130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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