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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좋은글,좋은책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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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춘수시인의 《꽃》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너는 나에게 ,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채시인의 《중년의 가슴에 2월이 오면》 중년의 가슴에 2월이 오면 시:이채 삶이 한 그루 나무라면 나는 뿌리일 게다 뿌리가 빛을 탐하더냐 행여라도 내 삶의 전부가 꽃의 표정이라고 생각하지 마 꽃이 필 때까지 나는 차가운 슬픔의 눈물이었어 잎이 돋을 때까지 나는 쓰라린 아픔의 몸부림인 걸 알고 있니 나무가 겨울일 때 뿌리는 숨결마저 얼어붙는다는 걸 꽁꽁 얼어버린 암흑 속에서 더 낮아져야 함을 더 깊어져야 함을 깨닫곤 하지 힘겨울수록 한층 더 강인해지는 나를 발견해 그 어떤 시련도 내 꿈을 빼앗아가진 못하지 삶이 한 그루 나무라면 나는 분명 뿌리일 게다 뿌리가 흙을 탓하더냐 다만 겨울을 견뎌야 봄이 옴을 알뿐이지
박노해시인의 《겨울 사랑》 겨울사랑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들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온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시인의 시-
이해인님의 《나를 위로하는 날》 나를 위로 하는 날 -이해인 시-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 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고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천상병시인의 《귀천》 귀천(歸天) -천상병 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용혜원의 《겨울비 내리던 날》 겨울비 내리던 날 -용혜원 시- ​우산 속에서 우리는 때아닌 겨울비로 정겹다 ​ 어둠이 내린 겨울밤에 쏟아지는 비는 검은색이다 ​ 한없이 걷고만 싶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 비 내리는 겨울밤 그대만 곁에 있으면 내 마음은 분홍빛이다 ​ 그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의 사랑도 내리는 겨울비에 촉촉이 젖어든다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겨울 장마가 온다 해도 행복하겠지요
청마 유치환의 《행복》 행복 -유치환 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 곁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