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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님의 시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천양희 詩-

하늘이 흐려지더니 마음이 먼저젖는다
이런 날은
매운 맛을 보는 게 상책이다

아귀찜 먹으러 '싱싱식당'엘 간다
손아귀로 아귀를 뜯으면서 생각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나
입속이 화끈거린다

나에게도 분명
매운 세상이 지나간 것이다

비처럼 젖는
세상의 예사로운 일이여
어떤 것은 눅눅하여
얼룩 된 지 여러날이다

비둘기가 종종거리며 길바닥을 찍고 있다

자전거를 굴리며 소년이
천상병거리를 지나고 있다
시인은 죽어서 거리를 남겼다

모든 확신은
증오로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생(生)의 후반이
우두커니 서 있다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일에
귀 기울이는 저녁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기를 써야 할 날은
오늘 같은 날이다

*펴낸곳:(주)창비
*지은이:천양희
*펴낸이:강일이
*초판 1쇄 발행/2021년 3월 31일
*천양희 시집 [지독히 다행한] 의 34-35p의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