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이어령 詩-
사진틀을 기억의 거울이라 불렀던 시절
백인 선교사 앞의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나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장미를 찍어도 까맣게 나오고
갠 하늘도 늘 흐린 흑백사진
평생 웃은 적이 없다는 뉴턴처럼
입 다문 내 얼굴의 흑백사진
지금이라면 치즈라고 미소를 지었을 텐데
소리와 색깔은 다 어디 가고
솔개가 조용히 날고 있는 하늘처럼
기억의 거울 속은 늘 조용하다.
비디오테이프처럼 되감아 보는 사진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 들리고
청솔가지 타는 냄새 풍기고
손끝에 황토 흙이 묻어난다.
비오는 날 이불 속처럼 아늑한
나의 성城 나의 청춘
가위질할 수 없는
흑백시간이여.
*이어령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40-41p에 실린 詩
*출판사: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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