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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예산 수덕사^^

"삼일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아침 이슬과 같다네"
너무 익숙한 법어이지요~

오늘은 예산의 수덕사를 둘러봅니다
덕숭산은 해발 495m밖에 안되는 나즈막한 산, 그 덕숭산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백제말에 창건되었다고도 하나 뚜렷한 기록은 없고 고려말 공민왕때 나옹선사가 중수하였다합니다.
구한말에 경허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고합니다.
경허스님은 1880년대 끊어진 선불교의 수행체계와 법통을 다시 수립하고 이어나가면서 수월,혜월,만공,한암스님 등의 제자를 길러냈는데 다른제자들은 각기 다른 처소에서 역할을 다했으며 이 중 만공스님만이 수덕사에 남아 스승이 뿌리내린 선불교를 전파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합니다.

수덕사의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30인이상 1,800원

일주문은 여기서에서부터가 사찰의 경내임을 알리는 문이지요
일주라는 말에 뜻이 담겨있듯이 부처님의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는 수덕사의 일주문입니다
기둥사이에 공포가 짜여있는 다포계형식으로 맞배지붕을 하고있습니다

*환희대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이구요
*정혜사는 수덕사의 말사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덕숭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약 1키로미터를 오르면 정혜사가 있습니다
*견성암은 1908년 만공선사가 창건한 비구니스님들의 참선도량이라고 합니다
*선수암은 1887년 비구니스님이신 귀만스님이 창건한 도량이라합니다

수덕사에 얽힌 전설 ?
두가지가 있네요
그첫번째는?
옛날 홍주마을 훌륭한가문에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는데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됩니다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청혼을 합니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덕숭낭자는 집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줄 것을 조건으로 허락을 합니다
절을 지을 때는 부처님만 생각하며 절을 지어야하는데 수덕도령의 마음속엔 온갖 다른 생각 뿐이었나봅니다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어버리고 또 다시 지었지만 또 실패로 돌아가고...세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지었습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는 것을 허락치않습니다
어느날 욕정을 참을 수 없었던 수덕도령이 강제로 덕숭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이 일어나며 낭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합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절은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 칭하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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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전설은?
신라시대 중창불사를 준비하던 중 한 여인이 불사를 돕겠다고 자청했다합니다.
그때 제상의 아들인 '정혜'라는 젊은이가 그 여인에게 청혼을 하고 큰 재산을 불사에 보탰다고합니다.
불사를 마치고 청년이 여자와 함께 떠나려하자 여자는 옷을 갈아입겠다며 사라지려했습니다.
청년이 여자를 잡으니 여자는 버선  한 짝만 남겨두고 홀연 옆에 있던 바위틈으로 사라졌다합니다.
백련당 뒤편의 바로 그 바위였습니다
여자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고 이후 이 여자의 이름을 따서 수덕사라고  부르게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나무  아니 나무의 열매 좀 보셔요
어느 상가앞  화분입니다
노란색은 그렇다치드라도 하얀색은 정말로 독새기(닭의 제주도사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드라니깐요
모두모두 차암 신기하다신기해를 연발하며 구경하였답니다

상가들이 참 예뻐요
식당도 기념품샵도 구경거리가 많은 동네입니다
이정도의 상권이 형성되었다는 건 수덕사를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