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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님의 시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류시화 詩-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할 말이 없거나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것의 의미를 잃었을 수도 있고
속엣말이
사랑,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에서
머뭇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안에서 홀로 견디는 법과
자신 안에서 사는 법 터득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겨울이 그 가슴을 영원한 거처로 삼았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단지 봄이 또다시
색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노래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새들이  그 마음속 음표를 다 물고 갔다고
넘겨짚어서는 안된다
외로움의 물기에 젖어
악보가 바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동행 없이 혼자 걷는다고 해서
외톨이의 길을 좋아한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길이 축복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었으나
가슴안에 아직 피지 않은 꽃들만이
그의 그림자와 동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음 봄을 기다리며

*류시화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의 32-33p의 詩
*펴낸곳:수오서재
*2022년 4월 11일 1판 1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