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이동순-
눈 펄펄 오는
아득한 벌판으로
부모 시신을 말에 묶어서
채찍으로 말 궁둥이 힘껏 때리면
그 말 종일토록 달리다가
저절로 말 등의 주검이 굴러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무덤이라네
남루한 육신은
주린 독수리들 날아와 거두어가네
지친 말이
들판 헤매다 돌아오면
부모님 살아온 듯
말 목을 껴안고 뺨 비비며
뜨거운 눈물
그제야 펑펑 쏟는다네
눈 펄펄 오는 아득한 벌판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자식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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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역쪽 사람들의 장례 의식인 풍장은 무심한 듯 보이면서 비장하다.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지 않고 초원 한가운데 그대로 갖다 버리다. 버리는 게 아니라 지상에 모시는 거다. 바람속에 방치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 야생독수리와 들짐승의 생명으로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 풍장이다. 그 과정은 기억과 인연의 기름때를 바람에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지평선은 언제나 삶의 울타리면서도 무덤이겠다.
*펴낸곳:모악
*<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안도현 엮음>의 152-153p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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