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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좋은글,좋은책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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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님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박노해님의 시 [별은 너에게로]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이외수님의 시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박노해님의 시 [거목의 최후] 거목의 최후 -박노해- 바람 부는 겨울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고 있었다 한 생의 사명을 다한 거인이 엷은 미소를 짓고 떠나가듯 천천히 대지를 향해 눕고 있었다. ​ 성냥개비보다 작은 몸으로 태어나 수만 배가 넘게 몸을 키워온 나무가 그보다 수만 배가 넘는 푸른 숨결을 묵묵히 지상에 바쳐준 저 나무가 이제 세상쯤은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수직에서 수평으로 쓰러지며 장엄한 한 생을 뉘이고 있었다 ​ 그가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흔들리고 부러지며 서 있던 자리에는 문득 공간이 환하게 열리고 그 텅 빈 고요와 쓸쓸함 사이로 눈부신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고 시린 하늘이 가득히 차오르고 있었다
김민소님의 [매일 당신이 좋은 이유] 매일 당신이 좋은 이유 -김민소- 월요일은 깊은 밤, 외롭지 않도록 발길따라 함께 걸어주는 달처럼 가슴 넓은 당신이라 좋고 화요일은 행여 몸이 차가와질까 제 몸을 아낌없이 태우는 불처럼 마음 따뜻한 당신이라 좋고 수요일은 마음에 때가 낄까 봐 낮은 자리로 쉼없이 흐르는 물처람 생각이 맑은 당신이라 좋고 목요일은 마음이 지쳐 고달파질까 초록빛 그늘을 내리는 나무처럼 싱그러운 당신이라 좋고 금요일은 감정에 자주 흔들릴까 화마가 휩쓸어도 변치않는 금처럼 한결같은 당신이라 좋고 토요일은 자칫 오만해질까 만물의 마당이 되어주는 흙처럼 진솔한 당신이라 좋고 일요일은 덧없는 삶이 무상해질까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살로 찾아주는 당신이라 좋은 것을요
허태기님의 시 [눈내리는 날] 눈 내리는 날 -허태기- 따끈한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 창으로 다가서서 꽃비처럼 흘러내리는 눈송이를 무심히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하얀 백지가 되어 ​ 고향을 그리면 고향이 다가오고 어린 시절을 그리면 옛 동무가 찾아준다. ​ 커피의 진한 향을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떨어지는 눈송이에 넋을 맡기면 ​ 흘러내리는 눈송이 마다 그리운 사람 사랑하던 사람들이 눈꽃처럼 피어나고 지난 시절의 시린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
나태주님의 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나태주 - 바람이 붑니다 창문이 덜컹 댑니다 어느 먼 땅에서 누군가 또 나를 생각하나 봅니다 바람이 붑니다 낙엽이 굴러갑니다 어느 먼 별에서 누군가 또 나를 슬퍼하나 봅니다 춥다는 것은 내가 아직도 숨쉬고 있다는 증거 외롭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혼자가 아닐 거라는 약속 바람이 붑니다 창문에 불이 켜집니다 어느 먼 하늘 밖에서 누군가 한 사람 나를 위해 기도를 챙기고 있나 봅니다
박노해님의 시 [새해에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새해에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박노해 - ​ 새해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집을 짓는 사람은 그 집에 살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그 물건을 두고두고 쓸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 일을 잘해보려는 사람은 그 일을 통해 사람도 좋아지겠다는 마음으로 ​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을 중심에 두는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 밥을 먹어도 이 밥을 기르고 지어낸 사람들을 생각하고 ​ 옷을 입고 차를 타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그것을 생산하고 땀 흘린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 우리 사회와 역사와 인류를 생각하되 사람을 중심에 두는 운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새해에는 일도 밥도 꿈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