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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좋은글,좋은책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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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님의 시 [봄날의 사랑 이야기] 봄날의 사랑 이야기 - 정연복- 사랑은 장미처럼 활활 불타지 않아도 좋으리 사랑은 목련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봄의 들판에 제비꽃처럼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작고 예쁘기만 해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그저 수줍은 새 색시인 듯 산 속 외딴곳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연분홍 진달래꽃 같기만 해도 좋으리 이세상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만의 맘속에 만 살금살금 자라나는 사랑이면 좋으리
복효근님의 시 [겨울 숲] 겨울 숲 - 복효근- 새들도 떠나고 그대가 한 그루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 있을 때 나도 헐벗은 한 그루 나무로 그대 곁에 서겠다 아무도 이 눈보라 멈출 수 없고 나 또한 그대가 될 수 없어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지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보라를 그대와 나누어 맞는 일뿐 그러나 그것마저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보라 그대로 하여 그대 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를 내가 견딘다 그리하여 언 땅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쥐고 체온을 나누며 끝끝내 하늘을 우러러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보라 어느 샌가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를 사람들은 숲이라 부른다
윤보영님의 시 [당신이 보고 싶은 날] 당신이 보고 싶은 날 -윤보영- 길을 가다 우연히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꽃을 보고 예쁜 꽃만 생각했던 내가 꽃 앞에서 꽃처럼 웃던 당신 기억을 꺼내고 있습니다 나무를 보고 무성한 잎을 먼저 생각했던 내가 나무 아래서 멋진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에 지워야 할 당신 생각이 오히려 가슴에 세찬 그리움으로 불어옵니다 하늘은 맑은데 가슴에서 비가 내립니다 당신이 더 보고 싶게 쏟아집니다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어 고통은 있겠지만 한 번쯤은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간절한 바람처럼 꼭 한 번은 만나겠지요 당신 앞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김재진님의 글 [미안하다] 미안하다 -김재진- ​미안하다 아들아, 오래 누워 있어서. 얼른 가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바깥엔 몇 번이나 계절이 지나가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어머니는 입술을 움직인다. 봄이 와도 미안하구나. ​가을이 와도 미안하구나. 계절 바뀌는 것도 송구하다며 안 가고 오래 살아 죄인 같다며 떨어지는 꽃잎처럼 물기 다 빠진 입술 달싹거려 사죄한다. 어머니 가시던 날, 내리던 비 그치고 화장터 가는 차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꽃에게 미안하다. 풀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산다는 건 알고 보니 미안한 일이구나
조병화님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정호승님의 시 [아버지의 나이]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목필균님의 시 [1월] 1월 -목필균 - 새해가 밝았다 1월이 열렸다 아직 창밖에는 겨울인데 가슴에 봄빛이 들어선다 나이 먹는다는 것이 연륜이 그어진다는 것이 주름살 늘어난다는 것이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 모두 바람이다 그래도 1월은 희망이라는 것 허물 벗고 새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 살아 있는 달 그렇게 살 수 있는 1월은 축복이다
정연복님의 시 [설날 떡국] 설날 떡국 -정연복- 설날 아침 맛있는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덩달아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나무로 치자면 나이테 산 줄이 더 그어지는 셈이다 그래, 올해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자 하루하루 전혀 조급함 없이 살면서도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고 겁먹거나 허둥대지 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좋은 사람 쪽으로 변화하면서 내가 먹은 나이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