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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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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님의 [송년의 시] 송년의 시 -정연복- 아침 햇살에 피어났다가 저녁 어스름에 지는 한 송이 꽃 같은 하루하루. 올 한 해도 바람같이 강물같이 삼백예순다섯 개의 오늘이 흘러갔다. 아쉽지만 슬퍼하지는 말자 세월의 꽃도 피고 지고 또다시 피어나느니.
이해인수녀님의 [송년의 시] 송년의 시​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치듯 빨리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지나가지요? ​ 나이들수록 시간들은 더 빨리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건 잊고 용서할 건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따뜻하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 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피천득님의 글 [송년] 송년 -피천득- ​ '또 한 해가 가는구나' -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되는 인생. 우리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의 정은 늙어 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1년은 더 빠른 것이다. 나는 반 세기를 헛되이 보내었다. 그것은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1주일 1주일을, 한 해 한 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학구에 충실치도 못했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 뒷골목을 걸어오며 늙었다. 시인 브라우닝이 '베네세라 선생'이란 시..
윤보영님의 [송년의 시] 송년의 시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으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지난 시간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창살로 햇빛이 찾아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을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황지우님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
서정윤님의 시 [홀로 서기] 홀로 서기 -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나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나태주님의 시 [사랑에 답함] 사랑에 답함 -나태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
정희성님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일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