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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좋은글,좋은책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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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님의 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용혜원- ​ ​ 모두 다 떠돌이 세상살이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누구를 만나야 할까. ​ 살아갈수록 서툴기만한 세상살이 맨몸, 맨발, 맨손으로 버틴 삶이 ​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나고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니 사랑이니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필요 때문에 ​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빈 가슴에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 ​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 생각하면 눈물만 나는 세상 ​ 가슴을 열고 욕심없이 사심없이 같이 웃고 같이 울어줄 누가 있을까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
이해인님의 시 [달빛 기도-한가위에] 달빛 기도-한가위에 -이해인- ​ 너도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걷어내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정현종님의 시 [방문객]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황동규님의 시 [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황동규-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복효근님의 시 [안개꽃] 안개꽃 -복효근-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도종환님의 시 [자목련] 자목련 -도종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 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자는 소리가 들렸다. ​ 백목련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정호승님의 세월호 추모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김남조님의 시 [편지]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