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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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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시인의 [이별역] 이별역 -원태연- 이번 정차할 역은 이별 이별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잊으신 미련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내리십시오 계속해서 사랑역으로 가실 분도 이번 역에서 기다림행 열차로 갈아타십시오 추억행 열차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당분간 운행하지 않습니다 *펴낸곳:(주)자음과 모음 *원태연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55p의 시
이정록님의 시 [의자]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펴낸곳:(주)문학과지성사 *이정록시집 의 10-11p에 실린 시입니다^^ -------------------- 어허~~ 이 어머니 철학자시네? 기대없이 펼쳐든 이정록님의시집 두번째 장의 시를 소리내어 읽는데 의미심장한 글이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요즘 어눌..
안도현님의 시 [산딸나무, 꽃 핀 아침] 산딸나무, 꽃 핀 아침 -안도현- 나무가 꽃을 피운다고? 아니다, 허공이 피운다 나무의 몸 속에 꽃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니다 나무가 그 꽃을 애써 밀어올렸던 게 아니다 허공이 꽃을 품고 있었다 저것 좀 봐라, 햇볕한테도 아니고 바람한테도 아니고 나무가 허공한테 팔을 벌리고 숨겨둔 꽃 좀 내놓으라고, 내 몸에도 꽃 좀 달아달라고, 팔을 벌리고 애원하는 자세로 나무가 허공을 떠받치고 허공을 우러르며 허공에다 경배하고 있는 것 좀 봐라 때가 되면 나무에 꽂은 핀다고? 아니다, 때가 되어야 허공이 나무에다 꽃을 매달아주는 것이다 산딸나무야, 몸 안에 꽃을 넣어두지 말아라 너는 인제 아프지 말아라 아침까지 몸 안에 술 든 나 혼자 다 아프겠다 *펴낸곳:(주)현대문학북스 *안도현시집 의 56-57p에 실린 글입니다.
이동순님의 [풍장]과 안도현님의 풍장해석^^ 풍장 -이동순- 눈 펄펄 오는 아득한 벌판으로 부모 시신을 말에 묶어서 채찍으로 말 궁둥이 힘껏 때리면 그 말 종일토록 달리다가 저절로 말 등의 주검이 굴러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무덤이라네 남루한 육신은 주린 독수리들 날아와 거두어가네 지친 말이 들판 헤매다 돌아오면 부모님 살아온 듯 말 목을 껴안고 뺨 비비며 뜨거운 눈물 그제야 펑펑 쏟는다네 눈 펄펄 오는 아득한 벌판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자식들 있네 ---------------- ※중국 서역쪽 사람들의 장례 의식인 풍장은 무심한 듯 보이면서 비장하다.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지 않고 초원 한가운데 그대로 갖다 버리다. 버리는 게 아니라 지상에 모시는 거다. 바람속에 방치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 야생독수리와 들짐승의 생명으로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 풍..
이수동님의 [동행] 동행 -이수동- 꽃 같은 그대, 나무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아트북스 *의 45p에 실린 글입니다^^
이수동님의 [높은 사랑] 높은 사랑 -이수동 글- 서로 위하고, 위하고, 위하다 보면 그 사랑은 매일매일 자라서 어느덧 구름도 태양도 그 아래에 있게 됩니다. 고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트북스 *의 32p에 실린 글입니다^^
도종환님의 시 [병든 짐승] 병든 짐승 -도종환- 산짐승은 몸에 병이 들면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다 숲이 내려 보내는 바람소리에 귀를 세우고 제 혀로 상처를 핥으며 아픈 시간이 몸을 지나가길 기다린다 나도 가만히 있자
이정하님의 시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이정하-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히 고이는 샘물 같은 것.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흘릴 일이다. 기어이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지 말라. 사랑은, 보내 놓고 가슴 아파하는 우직한 사람이 하는 일.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떠나는 그의 앞길을 막아 서지 말고 그를 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줄 일이다. 사랑이란 그런 거다. 그를 위해 나는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이다. 어떤 아픔도 나 혼자서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를 내 안에만 가둬 두지 않을 일이다. *책만드는집 *이정하대표시의 54-55p에 수록된 시입니다^^